주일말씀 성령강림 후 스물한째 주일
제목 성령은 나를 세계복음화로 삶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본문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8절
저는 오늘 성령강림 후 스물한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은 나를 세계복음화로 삶의 방향을 바꾸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중에 인생의 목표에 대해 늘 무의식적으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명예를 더 높은 위치까지 가져야겠다, 권세를 더 많이 가져야겠다, 그래서 전국에 내 이름을 더 높이고 자녀와 후손에게 다 물려주어 계속 이어지게 해야겠다. 이것이 어쩌면 저만 가지고 있는, 그냥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만 아니라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다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것인지, 그렇다면 인생의 목표를 이것이 아니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이 부분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점검해 보고 또 바뀌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에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저를 따라 해 봅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저는 제 자신이 압니다. 제가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전에는 생각에서 생각으로 끝났을 것 같지만, 이제는 아무리 부정적인 생각이 나오고 아무리 남을 심판하는 생각이라도 거기에 늘 예수는 그리스도를 붙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 달라져 가고 있고 달라져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 대해 참 많이 만족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특히 이번 주에는 목사님들이 모이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1년에 딱 두 번 있는 노회입니다. 예전에는 다녀오고 나면 늘 찝찝하고,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남의 모습이 아니라 제 모습에서 그랬습니다.
모임에 가면 속에서 뭔가 막 튀어나옵니다. 튀어나오는 것이, 나를 자랑하고 싶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고, 내가 섬기는 교회가 뛰어나다는 것을 계속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은연중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드러내 말하는 성격은 못 되어 은근히 그것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모임을 다녀오면 며칠 동안은 늘 자책했습니다.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속에서 계속 너를 그렇게 자랑하고 싶으냐 했습니다. 같은 업종에 있으면 서로 자랑하고 그런 것이 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번만이 아니라 계속 제 자신과 싸웠습니다. 속에서 계속 싸운 것이 있었습니다.
다시 해 봅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특히 목사님들 현장에 가면 늘 실패하고 오니 계속 긴장하며 다녔습니다. 이것도 자꾸자꾸 달라졌는데, 이번에는 가서 회의를 몇 시간을 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가서 회의가 끝나고 나온 시간이 4시쯤 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일곱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녀오고 나서 정말 만족했습니다. 아, 내가 이겼구나, 싸워서 이기고 있었구나. 너무나 달라져 있는 내 자신이 보이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모든 것을 놓고 기도하려 하고, 어쩌면 저는 이제 내가 섬기는 내 교회 중심, 내 성도 중심에서 강남 전체를 보면서, 이 강남 전체를 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런 측면에서도 다시금 쳐다보고 갱신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 이번 주에도 제가 늘 오후에는 전도 현장에 갑니다. 예전에는 전도 현장을 의무적으로 갔지만 지금은 재미있어서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도 보고 기도하게 되고 저기도 보고 기도하게 됩니다. 제가 있는 현장은 너무 거대한 현장입니다. 거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입니다. 늘 가는 곳인데 매일매일 다릅니다. 그리고 매일 나에게 도전해 오는 메시지도 다릅니다. 그런데 바깥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통해 내가 그 영향 속에서 수많은 불신앙적인 생각을 하니, 그것을 계속 깨뜨리는 것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도란 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진정한 전도는 자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야 바깥이 바뀌는 것인데, 그래서 나를 바꿔야겠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 마음속에 예수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평안함을 잡아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있기 때문에 현장이 정말 재미있고, 계속 새로운 상황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이 생기면 잠시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치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있을 때, 예전 같으면 아유 너 또 실패했네, 그러니 천국 못 가 이런 식으로 꼭 제 생각으로 끌고 갔는데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그런 것이 왔을 때 당하기는 합니다. 내가 준비가 안 돼 있고 내 속에 다른 것이 있으니 그렇습니다. 한참 또 제 자신이 슬럼프를 겪다가, 아,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이고 내가 갱신할 기회, 갱신하는 제자구나 하고 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매일의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면 오늘도 새로운 일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알게 되고 나를 갱신할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를 좀 이렇게 보냈습니다.
두 번째. 이번 주에 창세기 3장 15절, 원죄에 대해 얼마나 더 깊이 알게 되었는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이고, 또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가 다 바깥에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는 다 이 안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에 그 근거가 나옵니다. 바깥에 있던 사단, 바깥에 있던 자기 중심, 바깥에 있던 돈 중심, 바깥에 있던 자기가 신이라는 것, 그것이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안 나갑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하나님의 자녀가 됐어도 안 나갑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죽을 때까지 안 나갑니다.
그런데 제가 수십 년간 목사가 되어서 더 착각했던 것이, 내가 구원받았으면 다 나간 줄 알았습니다. 구원받았으면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다 끝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내 육체에서는 다 안 끝났습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와 기도 제목을 다 바깥에, 바깥을 바꿔 주기만 원하지, 정작 내 안에는 내가 신이 되어 있어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문제이고, 그것이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에도, 진짜 내가 사실 마귀짓을 하고 있는 마귀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귀짓을 한다는 것이 꼭 남을 해코지하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바깥에서 오는 그 정보를 내가 받아서 나를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나 스스로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구나, 나는 오직 하나님으로밖에 바꿀 수 없구나 하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름이 창세기 3장 15절, 예수라는 그리스도, 그 영원한 이름입니다. 저를 따라서 살아 보겠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성경은 맨 처음부터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우리 속에 끊임없이 마귀짓을 하고 있고, 속에서부터 끊임없이 생각이 들어오고, 마가복음 7장 21절처럼 끊임없이 살인과 분쟁과 음란, 이것이 다 나오는 것 자체를 이길 수 있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름의 능력을 잘 모르니, 이 안은 내버려 두고 텅 빈 채 바깥에서 뭔가를 채우려고 지금 돌아다니고 있고 바깥에서 뭔가를 채우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채워 이 안에 들어오는 것은 다 귀신의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안에서 이길 수 있도록, 이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길 수 있도록 이미 언약을, 영원한 이름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창세기 3장 15절,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중요한지 더 알게 됩니다. 특히 아까 말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그 목사님들의 모임 현장이나 제가 바깥에서 전도하는 그 현장에서 제 안을 제가 절대 못 바꿉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부르니 자꾸 바뀌어 있는 내 자신이 보이는 것입니다. 야, 정말 신기하다 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은 그냥 이름이 아니고 주문이 아니라, 그 이름 부를 때 저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의 능력이 이 자리에 역사하셔서 계속 내 속에서 마귀짓을 하는 그 생각과 사상의 영을 다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아멘.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지만 예전에는 그냥 이론만 설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증인입니다. 그래서 정말 기분 좋게 증인의 입장으로 이렇게 서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봅니다. 지금 여러분을 제가 이끌 수 있는 증인으로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잡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제가 계속 부르듯이 부르시면 됩니다.
세 번째. 오늘 본문이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8절인데 창세기 3장 15절을 기반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성경은 모든 인간이 원죄로 인해 죄와 사망과 죽음 가운데 있고, 안에 이미 사단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인간이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이름을 창세기 3장 15절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그때부터 보면, 그 이름을 얼마나 깊이, 얼마나 자세히, 얼마나 붙드느냐에 따라서 사람마다 시간차가 있고 그 능력의 범위, 증거의 범위는 다르지만, 그것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누가 나옵니까.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오고 이삭이 나오고 이스라엘 백성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복음서에 보면 누가 나옵니까. 예수이신 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그분은 구약 성경에는 오신다 오신다는 약속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오신 이름이 무엇이냐면 예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공관복음에 보면 공생애 사역을 하시고 죽으시고 그다음에 부활하시고, 부활한 다음 40일 동안 계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사도행전이 나오지 않습니까.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무엇이 나옵니까.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지상에 계신 가운데, 사도행전 1장 8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외워 볼까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며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것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계신 가운데 120명이 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배경적으로 설명을 해 보면 이것입니다. **누가복음부터 사도행전까지 그 역사는 쭉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이어져 이제 주후 60년대가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직접 보고 들었던 세대가 살아남은 사람이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이제 복음이 증거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맨날 말로만 전할 것이 아니라 문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의사였던 누가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시작부터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의 일을 자세히 조사하여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입니다.** 그럼 누가복음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사람들이 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하늘에 올라갔는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쓰인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 있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한참 지난 다음에, 이미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다음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특히 두 책 모두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것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네 번째. 오늘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가.
오늘 제가 중점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8절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입니다. 승천하시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 하신 다음에 승천하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을 가만히 보면 거기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열쇠가 무엇이냐면, 120명에게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을 다 보여 주시는데, 그 120명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적어도 40일 동안 본 사람들입니다. 들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떤 소식을 들은 것과 직접 본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번 주에 어디 갔다 왔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번 주에 어떤 분들은 저기 청춘이라는 공연을 하시더라고요. 공연을 하러 몇 시간 동안 가고 또 올라오고 준비하고 하는 것인데, 저희들한테 카톡으로 딱 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냥 노래한 것 잠깐, 30초, 20초 그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잠깐 본 것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20초,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 참 감동된다 하면서 예수는 그리스도 기도하면서, 저기도 저렇게 하고 있구나 하면서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가기 전부터, 아침부터 준비를 해서 차를 대절하고, 가서 옷 준비를 하고, 수십 명이 또 모여서 리허설도 하고, 그다음에 실제로 하고, 실제로 할 때 다 보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보고 긴장 가운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 끝나고 나서 또 올라오지 않습니까. 거의 하루가 걸립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직접 경험한 사람하고 그냥 들은 사람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죽기 전하고 죽으셨을 때 봤던 제자들하고, 오늘 사도행전 1장 8절처럼 약 40일이 지난 다음의 제자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왜 다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무려 열흘도 아니고 40일 동안 직접 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시더라 하고 그냥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것이 얼마나 많고 깊고 자세하냐면, 40일 동안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그 40일 동안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전혀 다른 몸으로 바뀌셔서, 그다음에 이전에 있는 성경에 대한 것도 가르치시고,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문제도 가르치시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 다 그분이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과 내가 똑같은 사람 입장에서 여기서 가르칠 때도 이렇게 조금 감동이 되는데, 만약에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신 분이 여기서 40일 동안 가르친다고 해 보십시오. 그리고 눈으로 보면서 가르치는 것을 봐 보십시오. 그러면 사람이 다릅니다. 이 속에서 수없이 인간으로서 살아온 생각 자체가 다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가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살아 계심과 말씀을 다 해석하는 것을 직접 보여 주시니까 제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스스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인이 됐습니다. 증인. 안에서부터 증거가 팍 쌓인 증인이 되어서, 그다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면 이제 너희에게 성령만 오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만 오시면 자동으로 세계복음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설명한 부분입니다.
다섯 번째. 그러면 오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어쩌면 이것이 여러분과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쉬운 부분일 것입니다. 자, 먼저 한번 고백합시다. 우리는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 영원한 죄 가운데, 영원한 원죄 가운데, 영원히 사단에게 잡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저를 따라서 해 봅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물러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
자, 우리는 영원한 문제 가운데 있었는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지금 세계복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자, 오늘 이 말씀을 한번 적용해 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자기 속에 증거가 있는 증인이 되게 하시고, 이제 세계복음을 향해 가라는 것, 세계복음화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 너희의 사명이고 너희가 해야 할 일이고 앞으로 너희 인생의 목표이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도 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여러분과 나의 삶에 적용해 봅시다.
저는 가만히 봤을 때, 제가 태어나서 본 분이 누구냐면 저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열심히 회사 다니고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주로 일했던 것이 배 있지 않습니까. 큰 배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냐면 페인트 칠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돈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바깥에 보면 요즘도 나오는데, 뭐 조개나 굴 같은 것, 배에 딱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저희 어머니는 구라 같은 도구로 쭉 밀어서 다 벗겨 냅니다. 그다음에 페인트 칠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돈도 참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때 당시에.
그러니까 늘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속에, 부모님은 돈 열심히 벌어 많이 벌어서 우리 자녀들 좋은 학교 다니게 하고, 걱정 없이 살다가 노후는 자녀가 책임지고,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넘겨주고, 또 내가 죽어서 천국 가면 되겠지 하는 것이 자리잡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어려서부터 본 모습입니다. 그리고 저도 이것이 그냥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깔려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기본입니다. 한 번도 그런 것에 대해 비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또 내가 목사가 된 다음에 전도 하면, 이것이 참 좋은 용어입니다. 전도라는 단어 자체가 참 아름다운 용어고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정말 희석돼서 이상하게 됐습니다. 왜냐면 전도 하면 사람 꼬드겨서 데려오는 것, 이런 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목사가 된 다음에 전도라는 말을 여러분에게 별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전도가 안 되고 바깥 사람도 전도가 안 되는데, 어떻게 성도들에게 그 단어를 써서 혹사시키고 수고롭게 만들고 죄책감 들게 만드느냐 하여 그 용어를 안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세상을 지금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하기 원하시냐면, 세계복음으로 흘러가게 하기 원하시고 또 그렇게 흘러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장에도 나오지만 나중에 요한계시록 보면 나옵니다. 그러면 세계는, 우리가 볼 때 해석이 안 되고 돈이 다, 권력이 다인 것 같지만,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는 지금 세계복음을 향해 계속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해석이 안 될 뿐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도, 당장은 안 바뀌는 것이지만, 바뀌어 가는 과정이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인생의 방향을 바꿔야 됩니다. 어떤 방향으로 바꿉니까.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권력을 많이 차지해 내 이름을 엄청나게 더 높여서 영웅이 되든지, 아니면 재벌이 돼서 자녀에게 다 물려준다, 그것을 이제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쳐서 치유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합니까. 세계복음화의 증인으로 내가 살아가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세계복음을 향해 세계를 이끌어 가시듯이, 나도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을 세계복음화의 그 대열에 두고 가야겠다, 그 흐름으로 가야겠다, 그 방향으로 가야겠다, 그 목표로 가야겠다는 결단으로 여러분이 바꾸셔야 됩니다.
첫 번째로, 일단 속에서 바꾸셔야 됩니다.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바꾸셔야 됩니다.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제가 60대입니다. 제가 저 포함해서 여러분과 함께 영상을 만들지 않습니까. 시니어들에 대한 영상은 제가 시나리오 쓰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깥에 돌아다녀 보고 대화를 해 봅니다. 요즘에는 제가 말을 많이 해 봅니다. 다른 사람하고, 이제 단계가 다 넘어갔습니다. 그러면 저 같은 나이 때 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왜 인생이 내 맘대로 안 풀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엊그제 제가 세탁소 사장님하고 잠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옷을 맡기면서 사장님 얼굴 참 좋으시네요 하니까, 뭐가 좋아요, 안 풀리는 게 많은데 하십니다. 뭐가 그렇게 안 풀리세요, 하늘의 복 받으면 되잖아요 하니까, 하늘의 복은 다 어디로 간 것 같아 하고 이러십니다. 갑자기 물으니까 속에 있던 것이 팍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길거리를 다니면서 보면 저 같은 나이 되신 분들이 속에, 저도 예전에 그랬지만, 근심 걱정이 딱 차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기 인생대로 되지 않으니까 뭔가 답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놈의 인생이 갈수록 돈과 명예와 권세에 눌리게 되어 있고 잡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가 목표를 진짜 하나님의 언약으로 잡아야 됩니다. 저를 따라서 하겠습니다. 세계 복음. 세계 복음. 세계 복음. 세계 복음. 세계 복음. 세계 복음. 세계 복음.
이렇게 방향을 항상 그쪽으로 둬야 됩니다. 내가 먹고 자고 입고 쓰고, 자녀 키우고 돈 벌고 돈 쓰고 커피 마시고 하는 모든 것, 그 어떤 것을 보더라도 당장 안 믿어지더라도 항상 세계복음을 향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복음화를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단서를 두셨습니다. 증인이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증인이 된다는 것을 내안에교회 방식으로 해석해 보면, 증인은 자기가 증거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자기 속에 증거가 있으려면 어떻게 됩니까. 내안에교회 방식은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외우면 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외치면 됩니다, 내 마음속에. 그리고 오고 있는 수많은 생각을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밀어내면 됩니다.
왜냐면 제가 이번 주에 아까 말했지 않습니까. 목사님들하고 모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속에서 막 나오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안에교회 방식으로 무슨 생각이냐면, 야, 너 저 목사보다 낫잖아. 너는 저 목사보다 안수 더 빨리 받았잖아. 너는 저 목사보다 경력이 더 많잖아. 그렇지, 그래 너 잘났어. 그렇지, 나 잘났지. 속에서 막 대화가 되지 않습니까. 너는 그러니까, 저 사람 무시하면 어떻게 해야 돼. 아, 그럼 짜증 나지. 그런데 단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지, 너 대단하지. 속에서 막 솟아오릅니다.
그러면 이것을 말로 표현하면 어떻게 됩니까. 말로 표현하면 이 사람하고 나하고 점점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안 그렇습니까. 인간은 자기가 잘났다는 것을 말하면 말할수록 상대방 마음속에 무엇이 듭니까. 시기심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질투심이, 그렇죠, 당연히 일어나지 않습니까. 내가 내 자녀에 대해서 자랑을 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한마디 자랑이 나온다, 그러면 상대방이 아 대단하다 하고 있습니까. 한 명도 없습니다.
상대방은 무엇이 나옵니까. 어, 저 사람 됐다고, 나는 안 되는데 하고 시기심이 일어납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내가 이번에 돈 천만 원 벌었다 하면, 상대가 아 그랬어 하고 한번 좋아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나는 돈 빌려야 되겠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것이 인간은, 악해서, 내가 잘났다는 것을 말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통해 시기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고, 어떻게든 저기 있는 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것이 이 속에 사단이 있으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상대방의 마음은 모른 채, 약간 조장하면서 나만 대단한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은 계속 내가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거기서 무엇입니까. 상대방에게 시기와 질투가 쫙 일어나서 원수가 되어 가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그것을 정말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부르고 난 다음에, 내가 속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밀어내고, 상대를 나타내려 하는 마음은 또 기도해서 축복하고,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에 제 자신이 달라지니까 무엇이 나옵니까. 평안함이 생기더라고요. 얼굴에 여유가 생깁니다. 얼굴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제가 그분을 칭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쨌든 속에서, 제 속에서 비위 상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보니, 아, 저분을 내가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가 깜짝 놀랐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그럼 내가 무엇이 됐습니까. 증인이 됐지 않습니까.
성경이 세계복음화하라 하지만, 여러분과 나를 바깥에 어마어마한 일 하는 그것, 할 수도 없고 해도 안 되고 해 봤자 되지도 않습니다. 나만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는 그리스도를 자꾸자꾸 부를수록, 내가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집니다. 그러면 바깥에 증거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을 맺겠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는 그리스도를 찾고 부르면 부를수록,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 우편에 계신 성령께서 여러분과 내 속에서 자꾸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바꾸시고 사단적인 생각을 밀어내셔서, 내 안에 평안함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더욱더 확장되는 그 증거를 통하여 여러분과 내 주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계복음화의 증인이고, 내안에교회의 해석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나를 지키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수많은 증거를 세우는 증인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말씀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더 깊이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특히 바깥에 사단이 있던 곳에서 내 안에 수많은 사단적인 생각으로, 내 안에서 마가복음 7장 21절부터 23절처럼 끊임없이 원망과 질투와 죄악된 생각만 나오는 것을 내 내면 깊이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이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그 영원하고 유일하며 지금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물리쳐지고 세력이 약화되며 그 영이 깨뜨려지는 비밀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 마음속에 먼저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하시고, 그 증거를 통하여 내 주변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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