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교회 주일예배 2026.10.04.주일말씀 성령강림 후 열아홉째 주일
주일말씀 성령강림 후 열아홉째 주일
제목 성령은 경제 불안 속에서 우선순위를 세우십니다
본문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34절 (중심절 마태복음 6장 33절)
저는 오늘 성령강림 후 열아홉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은 경제 불안 속에서 우선순위를 세우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제목은 의식주에 관계된 것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동네에 아시아에서 제일 큰 병원이 있는데, 점심때쯤 거기에 갔습니다. 아침도 든든히 먹었고 전날 저녁에는 여러 사람과 비싼 식사도 함께 했기에, 점심까지는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점심때가 되니 매가리가 없고 힘이 쫙 빠지며 허기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한 끼만 제때 안 먹어도 식은땀이 올라오고 죽을 맛이 됩니다.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한 끼 안 먹으니 별생각이 다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에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지난주에 저는 나 중심에서 공동체와 지역을 품는 전도자로 성령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관점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나 중심에서 어떻게 공동체 중심으로 살 것인가를 두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여태까지 대부분 혼자 사는 식으로, 제 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제 주관을 가지고, 청년 때부터 목회하는 가운데도 그렇게 살아와서,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측면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말씀을 통해, 나 중심에서 이 지역과 어떤 단체를 전도자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놓고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도, 아 이 지역의 전도자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영과 직접 대면하며 싸운다, 그렇게 생각이 확장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영적 싸움을 유독 많이 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갑자기 제가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주한이가 킥보드를 타다가 턱이 깨졌습니다. 보니 피가 나고 찢어져서 그냥 있을 수도 없는데, 하필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러니 별생각이 다 밀려왔습니다. 예전에 제가 키운 딸이 머리 뒤가 찢어져 갑자기 수술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얘가 또 어떻게 될지 온갖 생각이 쫙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영적 싸움을 참 많이 했습니다. 특히 속삭임이 밀려왔습니다. 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 네가 아까 타지 말라고 했어야지. 이렇게 과거를 돌이켜,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며 저를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싸웠습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것이 어쩌면 이번 주에 제가 가장 치열하게 싸운 영적 싸움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 창세기 3장 15절을 이번 주에 어떻게 묵상하였는가.
저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다시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가 전도하러 다니고, 또 여러분과 제가 항상 고백하는 것이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왜 고백해야 합니까. 필요성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저를 포함해서,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이 떠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 속에서는 다 내가 중심이 되어 있고, 내가 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고사는 데 항상 중심을 두게 되고, 내가 신이니 기분 나쁘면 다 쳐내 버리고, 질병과 죽음과 재앙도 다 내가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집니다. 그러다 결국 죽습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 심판받게 되어 있고, 그 죄성을 자손에게 물려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바깥에 있던 사단이 이 안에 들어와 나의 모든 생각과 사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 죽을 때까지 스스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이름을 이미 주셨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은 그저 조금 복 받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 이름을 부르면,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이 다시 이 안에 들어와 성령으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지며, 그 권세가 자꾸 확인되면서 우리가 세계 복음화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제의 키워드는 의식주입니다. 그런데 이 의식주도 하나의 영입니다. 인간은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로 인하여,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살면서 늘 의식주에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산다고 하셨습니다. 적당히 해서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있으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15절,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니, 하나님이 나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곳을 채워 주십니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을 보면, 우리가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비와 눈과 바람과 햇빛이 적당해야 하고 자연재해가 없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는 하늘이 놋처럼 닫혀 아무것도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 상태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3장 15절,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가 회복된 사람에게는, 그 닫힌 하늘이 열려 하나님이 다 도우시고, 한 사람이 백 사람을 이기고 열 사람이 만 명을 이기며 모든 길이 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에 모든 것을 주실 수밖에 없는 그 권리를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창세기 3장 15절을 기반으로 오늘 본문을 간단히 설명함.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34절이고, 중심절은 33절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고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따로 떼어 설명하기보다 흐름으로 보겠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신다고 미리 약속하셨고, 그것이 구약 전체에 쭉 이어집니다. 몇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수많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등장하고, 성막과 성전이 등장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땅에 들어가 살다가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고 다시 돌아오는 일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 책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 진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구나.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도 인간 마음속의 이 험한 것은 도저히 잡을 수 없구나.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진정한 왕이 와야 한다. 구약을 다 읽으면 이 소원이 마음에 생깁니다. 그래서 결국 말라기부터 신약까지 사백 년의 공백이 흐른 다음, 드디어 마태복음에서 왕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 그분이 바로 예수입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오늘은 마태복음 6장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마태복음 5장과 6장과 7장은 산상수훈이라 불립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처음부터 압축해 한곳에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산상수훈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답이 없는 채로 읽으면, 내가 무엇을 하라는 말로 읽힙니다.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 들을수록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데, 하다 보면 한계가 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해서 복 받는다는 내용도 아니고, 그것을 하니 하나님이 예뻐하신다는 내용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너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믿으면 요한복음 1장 12절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그 자녀 안에 어마어마한 축복과 권세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산상수훈이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팔복은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니라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눈이 열려야만 그것이 보이고 누려집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6장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두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의식주인데, 그때 네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이냐 돈이냐, 하나님이냐 먹는 것이냐. 두 주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를 말씀하신 것이 6장이고, 특히 25절부터 34절이 그것을 노골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내용을 간략히 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늘 걱정하지 않느냐. 그런데 공중의 새를 보라. 곡식을 모아 두지도 않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다 먹이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 그런 것은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내일 일도 염려하지 말라.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네 번째. 오늘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부분.
오늘 본문은 불신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신자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 곧 적어도 저분은 메시아라고 마음으로 믿던 사람들이고, 그중에서도 제자들은 더 앞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기본적으로 이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인간이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의 근본 문제에 잡혀 하나님을 못 만나는 상태라는 것,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모든 문제의 끝이라는 것, 그리고 성령 충만과 세계 복음화를, 우리가 매일 외치는 그 기반을 그들도 이미 갖춘 사람들입니다. 물론 마태복음 5장과 6장만 보면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시점에서 보면 이미 그 기반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 기도하지 말라고는 안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것을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지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이란 먹고 입고 자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이나 허상 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생활을 극히 잘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자녀도 키워야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고 일교차도 심하니, 집도 튼튼해야 하고 사철 옷이 다 있어야 하고 잘 곳도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니 먼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로 여기가 문제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할 때, 그래 뭐 먹지 하고 생각하면 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갑자기 걱정이 밀려옵니다. 뭐 먹지, 종류도 많은데, 더 비싼 것 먹고 싶은데, 저 사람은 저걸 먹는데 나는 뭐 먹지.
제가 이번에 그 큰 병원 아래에 가 보니 음식이 많았습니다. 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 동네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당장 뭘 먹겠다는 것보다, 제 경제 수준을 먼저 따지게 됩니다. 점심을 먹었으니 만 원 이상은 넘어가면 안 된다 싶은데, 보니 삼만 육천 원짜리도 있습니다. 야 저건 내 수준에 안 맞아, 하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잘까에서, 생각이 확장되어 염려가 되고, 그 염려가 계속 증폭됩니다. 결국 어디까지 가느냐면, 아 나는 돈도 못 버네, 내 남편이나 나나 왜 이것밖에 못 벌까, 나는 왜 이런 데서 살까 하다가, 결국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며 자기 존재 자체까지 깎아내리고 부정하는 데까지 갑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더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앞에서 먹는 것을 위해 기도하라, 그러나 염려하지는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보다 더 우선하여 첫 번째로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누가복음 17장 20절과 21절에서 보듯, 대단한 왕이 와서 큰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먼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왕으로 계시는 상태,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계속 맺고 있는 상태입니다. 곧 무엇을 구하기 전에, 네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먼저 세워 놓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방식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무엇을 사라고 하면 속에서 수많은 염려부터 생깁니다. 의식주에 대한 것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몸에 밴 것이라 염려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때 먼저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러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상태로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을 먼저 밀어낸 다음에, 그다음에 구해야 할 의식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무슨 거창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안에, 각자 내 안에 있습니다. 이 안을 먼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상태로,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염려와 근심과 내 존재에 대한 비하와 짜증을, 돈과 먹는 것에 대한 것을 다 밀어낸 다음에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의식주의 염려는 내일, 모레, 오 년 후, 십 년 후, 노후까지 다 끌고 옵니다. 그것을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끊으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오늘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이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의 모든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축복과 권세가 회복되면서 지금 세계 복음화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의식주의 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중점적으로 볼 것이 의식주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의식주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생각이 다 의식주와 관계된 것입니다. 돈, 옷, 집, 먹을 것,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 다 여기에 잡혀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식주의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그 영에 그냥 잡혀, 하루 종일 그 영이 묻습니다. 오늘 뭐 먹을래, 무슨 옷 입을래, 너 돈 잘 벌어야지. 그것이 끊임없이 메시지로 와서, 마치 나의 생각인 양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꿈속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나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고, 여태까지 여러분과 저도 다 거기에 붙잡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해야 할 것은, 의식주를 붙잡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 결국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에 잡히게 하고 미래까지 끌고 와 나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 영을, 어떻게 내 마음속에서 밀어낼 것이냐입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의식주의 영에 완전히 붙잡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둘째, 죽을 때까지 붙잡힐 수밖에 없지만 조금이라도 벗어날 방법은 있습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아 내가 의식주의 영에 완전히 붙잡혀 있었구나. 백 퍼센트 잡혀 있던 것이 구십구 퍼센트로 조금 줄어듭니다. 조건은 그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계속 불러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꿈속에서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얼마나 의식주의 영에 붙잡혀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한번 보겠습니다. 의식주의 문제는 이렇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저에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의식주와 관계된 필요가 생깁니다. 저도 지난주에 옷 몇 개를 샀습니다. 제가 산 것이 아니라 사모님이 사 주셨습니다. 갑자기 추워졌는데 집 정리하다 허름한 옷을 다 버려 입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필요가 생기면 그다음부터 무엇이 되느냐면, 내 경제 수준 안에서 얼마짜리를 사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체면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 사회적 위치를 먼저 생각합니다. 좀 비싼 것을 사야겠는데, 내 체면도 있고. 그러다 보면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회적 위치,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가 동년배와 비교되니, 그 수준에 맞추려고 자꾸 더 사게 됩니다. 그러면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지출은 더 많아지고, 거기서 생기는 것이 빚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면, 하나님 돈 더 주세요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증을 들을 때 가장 은혜 받는 것이, 돈을 많이 벌었다, 갑자기 부자가 됐다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밑바탕에는, 자기의 실제 수입은 생각하지 않고 주변과의 비교 때문에 자녀와 배우자와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속 지출하게 되는 구조가 있습니다. 그러면 빚이 생기고, 빚이 생기면 마음이 초조해져, 왜 내 남편은 내 아내는 이것밖에 못 벌까, 나는 집이 왜 이럴까 하며 현재 수준을 비판하고, 결국 자기 존재 가치까지 깎아내립니다. 대부분의 부부 싸움이 다 돈 때문 아닙니까.
여기에 또 있습니다. 자기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수입 이상으로 과소비하기도 하고, 세일이 생기면 원하던 것을 또 사기도 하고, 저같이 노후 걱정 때문에 계속 더 벌어야 한다며 무언가를 더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의식주에 관계된 것은 늘 밑바탕에 영이 이렇게 공격합니다. 더 가져야 한다, 더 벌어야 한다. 이것이 여러분과 제 속에서 계속 속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전혀 평안하지 않습니다. 물건 하나 사는데도 피로가 쌓이고, 다 사고 나서도 속에서 짜증나고 답답합니다. 자녀에게 무언가를 사 주고 나서도 평안한 것이 아니라 더 짜증나고 답답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 이미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왜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려 하느냐면, 자꾸 부르다 보면 비교해서 무리하게 사고 나와 배우자와 자녀를 깎아내리며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상태가 아니라, 내 필요에 더 집중하고 내 현실 수입에 맞춰 할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사면서도 마음에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해야 할 것은 자꾸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으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면 나는 이것밖에 못 버는데 엄청나게 벌 것이다, 갑자기 무언가 생길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귀신의 속삭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나중 일이고, 현실에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제가 저 자신을 볼 때,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귀신이 나에게 환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면, 내 현실 생활을 냉정하게 보면서 거기에 집중하고 만족하며 살게 됩니다. 그렇게 내 자신을 지키고 경제 수준을 지키면,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것을 하실 것입니다. 그전에 내가 의식주를 위해 내 마음을 지키고 훈련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를 따라 다시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가만히 보면, 의식주의 영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단이 의식주의 모습을 하고 여러분과 제 안에 들어와, 바깥 사람들을 통하여, 텔레비전을 통하여, 누가 좋은 옷을 입고 오면 바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야 저 사람은 저런데 너는 뭐냐. 꼭 내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그것을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끊어내고 밀어내야만, 여러분이 진정으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 영과 싸우고 그 이름을 부를 때, 성령이 여러분과 저를 통치하시고 지키시기에, 응답받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말씀 붙잡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의식주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인 양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의식주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며 나 자신도 불신하고 남도 불신하여, 가정이 깨어지고 파탄에 이르는 데까지 몰아가는 그 속삭임의 영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예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성령께서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셔서 의식주에 잡혀 있던 데서 자유롭게 하시고, 새로운 눈으로 일상의 물질 세계와 나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